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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제목 : 세계불교문화유산시리즈 - 아잔타석굴사원 (Ajanta Caves)


글쓴이 : 포토스튜디오49

등록일 : 2020-07-24 12:03
조회수 : 19
 
















화려함속에 애잔한 정이 표현된 고대불교 석굴사원

     

인도의 여름 날씨는 참으로 혹독하다. 한낮의 기온이 45도를 넘나들다보니 햇볕에 노출된 모든 것들이 타들어 간다. 그래서 인도의 나무들은 미리 잎사귀를 떨구고 여름나기를 준비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우기철이 시작되면 4개월가량의 긴 몬순을 만나게 되는데, 이때는 홍수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농경지가 다 잠기고 마을전체가 이재민 신세가 되기도 한다.

또한 겨울날씨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짙은 안개에 음습한 냉기는 영상의 날씨임에도 사람들을 움츠리게 만든다. 천 한 겹으로 야외비박을 많이 하는 인도인들에게 이러한 날씨는 동사를 불러오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서 집을 떠나 수행하는 승려들도 고통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들여야한다.

그들에게 안정적으로 수행에 정진 할 수 있는 곳은 지상에는 아무데도 없다. 그래서 날씨의 혹독함을 피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바로 암벽을 파고들어가는 석굴사원이다.

석굴사원은 수행자에게는 모든 조건이 충족되는 최상의 공간이다. 세상 소리가 들리지도 않고 항시 어둡기에 집중하기도 좋다. 또한 예불시 그 독경소리는 동공현상으로 장엄함은 배가되었을 것이다.  

또한 석굴사원은 종교적으로도 의미가 깊어 수행자들이 선호하는 장소이다. 전통적으로 인도에서는 수미산을 우주의 중심축이고 이 중심축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통로이니 산 아래 석굴은 하늘과 연결되는 통로에 자리한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최상의 수행공간을 조성하는 데에는 시간과 경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현재 인도에는 불교석굴사원이 1,300여개가 남아있는데 대부분 인도 서부 데칸고원을 중심으로 70%가 몰려있다.

이렇게 많은 석굴사원 중에 인도미술의 보고이자 불교미술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유산 아잔타석굴사원이 있다.

  

데칸고원의 아고라(Waghora) 강변 절벽에 있는 아잔타 석굴사원은 최상의 조건을 갖춘 수행처로 손꼽힌다.

좁은 협곡이 말발굽처럼 휘어 굽이치는 바깥쪽 절벽 중간인 75m지점에 29개의 석굴이 1.5km에 걸쳐 파노라마처럼 펼쳐 있는데 석굴의 앞이 모두 건너편 절벽으로 막혀있어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위치다.

29개의 석굴 중에 불상이나 탑을 안치한 예불공간 차이트야(Caitya)5(9, 10, 19, 26, 29석굴)이고, 나머지 24개는 승려들의 개인 수행공간인 비하라(Vihara).  

아잔타석굴사원은 기원전 2세기부터 조성되기 시작해서 기원후 3세기까지 조성되었다가 중단되었고 다시 5세기에 조성되기 시작해 대략 6세기 말까지 이어졌다.

석굴사원 조성에 경제적으로 뒷받침해준 시주자들은 대상인들이었다. 대상인들은 인도대륙을 남북으로 오가며 무역을 하였는데 아잔타는 그 남북으로 연결되는 교통로와 접해있기도 하였고 중국과 무역하는 항구와도 가깝게 접해 있었다.

그래서 상인들은 중간에 쉴 수 있는 공간과 긴 여행의 무사안전을 위해 기꺼이 석굴사원을 조성하는 큰 시주자가 되었던 것이다.

또한 석굴의 조성은 경제력과 함께 권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대공사다. 그래서 석굴 조성에 인도왕조의 지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하였다.

초기 석굴이 조성되기 시작할 때인 기원전 2세기부터는 사타바하나왕조(Sātavāhana dynasty)의 지원을 받았으나 기원후 3세기에 왕조가 망하면서 석굴조성도 중단되었다. 이후 5세기 바카타카왕조(Vākātaka dynasty)의 후원으로 석굴사원도 다시 조성되기 시작했지만 6세기말에 힌두교를 신봉하는 팔라바왕조(Pallava dynasty)가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 길게 이어져온 석굴사원의 건축은 중단되었다.

이후 천년 넘게 아잔타석굴사원은 자연 속에 묻혀 있다가 1819428, 영국군 병사 존 스미스(John Smith)의 일행이 호랑이를 사냥하다가 발견하였고 1839년 고고학자 퍼슨(Person)의 조사보고서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많은 학자들과 순례자가 찾는 인도최고의 관광지이자 불교도들의 성지가 되었다.

     

아잔타 석굴사원에는 조성한지 2000년이 넘어가지만 아직도 생생한 원색을 잃지 않은 벽화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는 석굴사원으로 조성되어 외부에서 빛이 들어오는 것이 차단되어 탈색을 막았고 그나마 미세하게 들어온 빛도 인간의 발길이 끊기면서 벽화에 먼지가 쌓여 그 미세한 빛마저 차단하여 색상을 잃지 않게 된 것이다.

역설적으로 인간이 조성한 석굴사원이 인간의 발길이 멈추면서 시간도 멈추게 되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지금 우리의 소중한 유산으로 남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잔타석굴사원이 왜 버려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보니 의견만 분분하다.

당시 팔라바왕조(Pallava dynasty)가 세력을 확대해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 힌두사원 조성을 위해 석공들을 모두 이주시켰다는 설과 인근에 발생한 혹독한 가뭄으로 인해 주민들이 모두 떠나 승려들도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설이다.

그런데 당시 시대적 상황을 보면 위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한 복합적인 이유일 가능성이 있다. 당시는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하고 힌두교가 번성하기 시작하던 시기이기 때문에 신도들의 시주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불교 세력이 약화되면서 불교승려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게 되었고 그나마도 마을과 더 가까운 엘로라석굴사원(Ellora Caves)이 조성되면서 모두 이동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힌두교를 신봉하는 팔라바왕조의 왕들이 새로이 대단위 힌두사원을 곳곳에 건설하면서 더 많은 석공들을 필요로 했기에 더 이상의 조성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현재 아잔타석굴을 보면 미완성으로 남은 부분이 많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중단의 이유가 어쨌든 천년의 공백기는 초기불교미술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아잔타석굴사원은 인도불교미술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원시불교미술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사원이자

     

     

이렇게 아잔타석굴사원이 가지는 의미는 기원전 2세기부터 시작하여 6세기까지 조성되면서 초기불교의 무불상 시대부터 시작하여 불상이 탄생되어 최절정기라고 할 수 있는 굽타시대(Gupta dynasty, 320~550년경)의 불교미술까지 그리고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하는 시기까지 불교미술사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무불상시대의 예불공간에서부터 불상이 안치된 예불공간까지 사원까지 변화된 석굴사원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29개의 석굴사원을 크게 세 단계로 구분 할 수 있는데, 첫 번째 시기는 무불상시대에 조성된 사원이다. 석가모니 입멸 후 제자들은 부처님의 뜻에 따라 상(image, )을 만들지 않고 법(dharma) 즉 말씀을 스승으로 삼았다.

그러나 종교의식이 형성되고 예불공간에 표현이 필요했기에 부처의 상징물로 초기에 안치된 것이 탑(stūpa)이었다.

또한 예불공간을 장엄하기 위해 벽화를 조성했는데 이때도 부처님의 모습은 상징물로 대체되었다. 녹야원의 사슴형태나 붓다의 족적, 빈 대좌, 보리수 등으로 그의 존재를 상징하였다.

아잔타에서 가장 먼저 조성된 제 10굴에는 당시 사원의 특징적인 요소가 모두 적용되었다.

예불 공간 전면중앙에 원형의 탑이 있고 천정은 원형으로 조성하여 높이를 높였다. 또한 좌우측으로는 팔각기둥이 나열되어 있어 공간 확장과 함께 예불공간과 복도공간을 구분한다. 이 복도공간은 탑을 감싸면서 원형으로 조성되었는데 이는 탑돌이를 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을 갖추기 위함이다.    

원형의 탑은 인도의 전통적인 형태 그대로인데 원형의 탑 위에는 노반과 산개, 찰주가 있다.

팔각기둥과 벽면에는 벽화가 조성된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이렇게 조성된 예불공간은 화려함보다는 장엄함이 앞선다.

     

두 번째 시기는 탑과 초기 불상의 모습이 함께 조성되었던 시기이다. 1세기 무렵 간다라와 마투라에서 불상이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예불공간에 붓다의 상징물로 불상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시기 아잔타석굴사원에는 탑에 불상을 조성하는 형태로 등장하는데 19굴에서는 탑에 입불상, 26굴에서는 좌불상을 조성하였다.

이때 조성된 석굴사원은 조각기술과 벽화조성이 최고로 발달되어 예불공간의 기본적인 형태는 원시불교시대와 거의 흡사하지만 벽과 기둥, 상인방등에 유려한 조각들로 가득 채웠다.

또한 조각에 채색하는 기법도 발달하여 조각의 음영에 따라 색채를 달리하여 석굴의 아주 작은 빛에도 원근감이 또렷하게 나타나게 하여 생동감을 더 하였다.

이후 아잔타에서는 석굴조성이 중단되었다가 5세기에 다시 시작되었는데, 이때를 세 번째 시기이자 마지막 조성시기다.

아잔타석굴사원 중 가장 후대에 조성된 사원은 19굴로 인도미술사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굽타양식으로 조성하였다.

이 시기 탑은 보이지 않고 불상만을 안치하면서 벽과 천정, 기둥 등에 섬세한 조각과 화려한 벽화로 장엄하는 방식으로 변했다. 또한 벽화의 내용과 조각의 내용도 많이 변했는데 이는 인도의 불교가 소승불교에서 대승불교로 바뀐 이유이기도 하다.

이 시기 조성된 석굴의 건축법은 기존에 조성된 돔형의 천정대신에 평면천장으로 조성되었는데 그만큼 개착기술이 발달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두 줄로 세웠던 기둥들도 사라지고 내부 공간도 예불공간인 전실과 불상을 안치하는 후실로 구분되는 방식이다.

     

아잔타석굴사원은 내부의 화려함을 자랑하는데 이는 예술성으로나 종교적으로 또한 인도의 전통적인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수준 높은 벽화가 있기 때문이다.

석굴사원에서 벽화는 많은 공력을 필요로 하는데 그 이유는 벽이 정과 마치로 파서 만든 돌이기 때문이다.

망치로 때려 파낸 정의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거친 벽면에 가장 먼저 마른 풀이나 동물들의 털을 섞은 거친 진흙으로 면을 다듬어야한다. 이때 진흙에 풀이나 털을 넣는 이유는 갈라짐을 방지함과 접착력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위에 곱게 정제된 진흙을 다시 발라 면을 고른 후 흰 석고를 다시 발라 흰 도화지처럼 만든 뒤 그리는 방식으로 조성되었다.

벽화의 내용 중에 가장 많이 그려진 것은 25편에 달하는 붓다의 전생담 즉 자카타(Jataka)이다. 그런데 조성하는 방식이 다른 지역에 조성된 불화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아잔타의 벽화는 종교화의 틀이나 규제에 얽매임 없이 자유분방하면서도 매우 상징적이며 인물들에 감정적 표현이 아주 뛰어나다.

자카타 이야기 전개 중 가장 교훈적이며 중요한 장면에 가장 많은 공간을 할애하면서 더불어서 주인공인 붓다의 모습을 유난히 크게 그렸다. 그러면서 색을 달리하여 주변과 차별을 두어 벽화의 상징성을 부각하려 하였다.

그래서 전생담을 모르는 이들이 보면 어떤 내용인지 혼란을 가져올 수 있지만 내용을 아는 이들에게는 강한 메시지가 오도록 하였다.

     

이처럼 예불공간인 차이트야는 시기적으로 당시 유행하는 형태를 최고의 기술로 조성되였지만 승려들의 수행공간인 비하라는 거의 대부분 동일한 양식으로 조성되었다.

중앙공간을 중심으로 작은 방을 조성하였는데 이 공간에는 좁은 돌침대가 있어 수행자들의 사적공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중앙공간에는 대부분 벽화를 장식한 것으로 보아 단순히 승려들의 공동생활공간이 아니라 이 또한 소단위의 수행공간임을 알 수 있다.

     

     

맨 처음 절벽에 밧줄을 매고 허공에 매달려 첫 망치질로 시작했을 작은 움직임은 위대한 역사적인 산물을 만들어 내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석굴사원은 오로지 머리 깎고 붉은 옷을 입은 수행자의 몫이 아니라 거친 손에 망치와 붓을 든 이들에 노동의 수행으로 완성된 종교이자 예술이자 삶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아잔타석굴사원은 인도불교사원의 결정체이자 한 점의 거대한 예술조각이고 장대한 한 폭의 예술화이다.

     

아잔타석굴사원은 오늘도 끝없이 이어지는 방문자의 행렬을 맞이하고 있다.

인근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에서 부터 불심으로 먼 곳에서 찾아온 수많은 불교신자들, 그리고 한 가닥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온 서양관광객들까지 인종도 다르고 찾아온 이유도 다르지만 어둠속에서 느끼는 것은 모두 똑같은 감격일 것이다.

그 감격이 종교적 신심에서 나왔거나 단순한 예술품에서 나왔을 지라도 그들에게서 아잔타의 감동은 평생 잊혀 지지 않을 한 순간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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