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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제목 : 미얀마 사람들의 삶속의 불교, 불교속의 삶


글쓴이 : 포토스튜디오49

등록일 : 2020-02-08 19:14
조회수 : 21
 










미얀마의 중부도시 빠꼬꾸(Pakokku)에 살고 있는 7살 타니는 오늘 일찍 일어났다. 한 번도 엄마가 깨우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았던 타니가 이렇게 일찍 일어난 이유는 오늘이 그의 신쀼(Shin Pyu)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미 집안에는 많은 마을사람들이 모여 그의 신쀼 의식을 축하해 주러 모여들고 있었고 그들은 평소에 보지 못했던 멋진 옷을 입고 있었다. 

타니도 찬물로 세수를 하니 어른들이 모여들어 그의 얼굴에 향기 가득한 화장품을 발라주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세수 후에 다나까를 갈아 볼에 바르는 것이 모두였건만 오늘 그는 멋지게 화장을 하였다.

눈썹도 그리고 얼굴에 하얀 분도 바르고 입술에도 빨간색으로 칠해주었다. 또 부모님께서 몇 년 동안 모은 돈으로 준비한 옷과 모자로 갈아입었다. 평상시에는 만져보지도 못했을 부드러운 천으로 된 옷이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니 더 많은 마을사람들이 손에 꽃과 보시물품을 들고 모여들었다. 또한 울타리 밖에는 그가 타고갈 말도 멋지게 장식을 한 채 옆집 삼촌이 고삐를 잡고 있고 옆 마을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도 도착하여 연주하고 있었다.

이제 사원으로 출발할 시간이 된 것이다. 맨 앞에는 악대와 광대로 분장한 형들이 가장 먼저 길잡이를 하고, 그 뒤에는 말을 타고 왕자가 된 타니가 뒤따랐다. 그 뒤로 마을사람들이 보시할 성물을 들고 한 줄로 길게 뒤따랐다. 길옆에 늘어선 많은 사람들이 타니의 신쀼 의식을 축하해주는 사이에 그이 행렬은 마을 인근에 있는 욕 손 짜웅(Yoke Son Kyaung)으로 향했다.

이 수도원은 오래된 수도원으로 많은 스님들이 공부하며 수행하는 곳으로 타니의 할아버지도 타니의 아버지, 타니의 형도 이곳에서 신쀼를 하였기에 이미 타니도 많이 왔던 곳이다.

넓은 예불소에서 함께 온 마을사람들과 예불을 드렸다. 그리고 큰 스님으로부터 덕담을 들었다. 그리고 뒷마당으로 가서 조요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큰 스님은 조용하게 타니의 머리카락을 자르니 검은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옆에서 합장을 하고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졌다. 장한 아들의 모습, 완전한 가족과 사회의 일원이 되어가는 아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어느덧 타니의 머리는 말끔해졌고 찬 물로 머리를 씻어내었다.

그리고는 스님 방으로 들어가 붉은색 승복을 입었다. 큰스님은 옷을 입는 법과 수도원에서 생활하면서 주의사항을 자세하게 알려주셨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니 문밖에서 기다리시던 부모님은 합장을 하고 뒤돌아 가셨다.

이제 타니는 이 수도원에서 일주일간의 승려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미얀마에서 신쀼는 남자라면 가장 처음 접하는 불교의식 중에 하나이다. 신쀼 의식을 단기출가라고 할 수 있기에 대부분 일주일 정도 체험하지만 그대로 승려로서 생활하는 이들도 많다.

그래서 미얀마에서의 신쀼는 가족의 한 일원이자 미얀마 불교신자로 인정받는 어른이 되는 첫 단계이기에 성년식도 포함된 의식이다.

그래서 미얀마 남자에게 신쀼 의식이란 첫돌보다도 더 중요한 의식이고, 이 다음에 커서 맞이하게 될 결혼보다도 종교적으로는 더 중요한 의식이 된다.  

그래서 미얀마 남자라면 화려함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안 해본 사람은 거의 없다.

가정형편에 따라 하는 시기는 조금 다르지만 대개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다. 이 날은 한 사람의 일도 아니고 한 가정의 일도 아닌 마을의 일이고 미얀마 남자의 일이 된다. 그러니 부유한 집안에서 신쀼를 할 때면 아들뿐만이 아니라 마을의 가난한 자녀들까지 함께 신쀼를 진행한다. 물론 그 경비는 모두 부유한 집안에서 지불함으로써 자식의 신쀼와 더불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성스러운 보시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쀼의 모습은 석가모니의 출가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데, 가장 화려하게 꾸미고 말을 타고 집을 나서지만 사원에서는 삭발을 하므로 써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수행자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즉 석가모니의 출가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때부터가 진정한 불교신자로 태어남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쀼 이후 타니가 커가면서 맞이하는 대부분의 명절과 축제는 다른 불교나라에는 없는 미얀마 고유 행사로 모두 부처님의 일대기를 기념하기 위한 불교행사들이다.

매년 4월 혹은 5월에 벌어지는 까손(Kason) 축제는 부처님의 탄생과 성도, 열반을 기념하는 행사로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악대를 앞세워 사원으로 가서 보리수와 불상에 성수를 뿌리며 예불하는 명절이다.

6월경에 열리는  와소(Waso)축제는 우안거를 기념하는 행사로 수도원의 스님이 안거 기간 중 필요한 물품을 마을별로 보시는 하는 축제고,  안거가 끝나는 9월경에는 따딘윳(Tadin gyut)이라는 불의 축제가 대단위로 열린다. 이 축제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도솔천에 있는 마야부인에게 설법을 하고 내려온 날을 기념하는 행사로 3일에 걸쳐 진행된다. 보름 전날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부처님을 환영한다는 의미로 미얀마의 모든 집에서는 불을 환하게 밝힌다.

이 밖에도 11월에 열리는 따자웅몬(Tazaung Mon)축제는 싯달타 왕자가 출가하였을 때가 이달 보름이었고, 도솔천에 있던 마야부인이 출가한 아들을 위해 사문의 옷이 필요한 것을 알고 밤새 짜서 범천에게 내려 보냈다는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래서 이때 많은 신도들은 가사를 짜서 스님께 보시한다.

이 밖에도 미얀마에서는 많은 축제가 열리지만 이 모두가 부처님을 위한 예불의 형태고, 대부분의 의식은 마을별로 수도원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명절 혹은 의식이 축제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미얀마 사람들이 축제 때만 사원을 찾는 것은 아니다. 아주 작은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사원이다.

슬픈 일이건 기쁜 일이건 그들은 항시 사원을 찾아 예불한다. 또 그렇다고 일이 생겼을 때 만 사원을 찾는 것 또한 아니다. 미얀마 사람들의 발길은 항시 사원을 향해 열려있다.

젊은이들이 데이트할 때도 사원을 찾고, 학생들이 모여 스터디그룹활동 때에도 사원을 찾는다.

멀리 있던 친지나 친구가 찾아와도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사원을 찾아 담소를 나눈다. 심지어 집에 있기 너무나 심심하면 사원을 찾아 낮잠도 즐긴다.

이들이 사원을 찾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불탑을 돌면서 불탑주변에 조성된 많은 동물들의 형상에서 자신이 태어난 해의 상징동물을 찾아 자신의 나이만큼 성수를 붓는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탑돌이가 끝나면 불탑이 보이는 조용한 공간을 찾아 기도를 하고, 커다란 종을 찾아 세 번 종을 치고 합장을 한다. 그런 다음에 그늘이 있은 곳에서 동행자들과 이야기를 한다.

그늘이 있는 공간은 불탑 주변의 법당이어도 상관없고, 종루도 상관없다. 시원한 곳이면 어디든 대화의 판을 벌이게 되는데 이때 분명하게 지키는 것은 발의 방향이 부처님을 향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렸을 적부터 찾아왔던 사원이기에 사원에서의 생활에 조금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미얀마에서 사원이라고 모두 다 같은 사원은 아니다. 보통 불탑을 제디(Ze)라 부르고 불탑의 내부에 법당이 있는 사원을 파토(Patho)라고 부르는데, 대부분의 제디와 파토의 관리주체는 그 사원이 있는 마을이 된다. 그래서 그곳에는 스님이 보이질 않는다. 가끔 사원에서 스님을 볼 수 있는데 그 스님들 역시 방문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얀마에 그 많은 스님들은 다 어디에 계신 것일까?

스님들이 머물며 수행하는 곳을 짜웅(Kyaung)이라 부른다. 이곳은 수도원으로 스님들이 거처하며 수행하고 공부하는 곳이다.

영국신민시절을 거치면서 교육의 많은 부분을 이제 학교가 담당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사원이 교육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학교 역할까지 하는 짜웅은 또한 고아원, 양육원 역할까지 맞아서 하기에 사원의 존재는 미얀마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불탑이 있는 사원이 많고, 때로는 불탑주변으로 법당이 형성된 사원들이 많은데 이곳은 미얀마 사람들의 예불의 장소이자 위에서 말한 소통의 장소, 약속의 장소, 휴식의 장소가 된다.

그런데 사원을 관리하려면 많은 경제력이 필요하기에 잘사는 마을일수록 불탑의 관리도 잘 이루어진다.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할 때, 자기의 재산을 사원에 보시하기에 사원의 경제력은 생각보다 탄탄하다. 이러한 보시금은 또다시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분해가 이루어진다. 또한 경비가 필요한 부분이 발생하면 별도의 사용목적을 적힌 보시함을 설치고 보시를 받는다. 그래서 미얀마 사원에는 용도별로 많은 보시함이 있다.

     

미얀마 가정에도 별도의 불단을 모시고 가장 먼저 일어나 예불하는 가정들이 많은데, 미얀마 사람들은 언제부터 어떻게 삶의 불교, 불교의 삶을 실천하게 되었을까? 미얀마에 불교가 완전하게 뿌리를 내린 것은 바간시대 때인 11세기경이다. 그러나 아주 이전부터 그들은 불교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러한 믿음은 미얀마의 옛 전설에 그대로 녹아 있다.

무엇보다도 미얀마사람들은 그들이 석가모니와 동일민족이라고 믿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기 이전인 B.C. 9세기경 샤카족의 왕이었던 아비라자(Abhiraja)가 서쪽으로 이동하여 산을 넘은 후 에야와디 강의 상류에 따가웅(Tagaung) 왕국을 건설했고, 그들과 토착민이 결합된 사람들이 미얀마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미얀마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성지가 많이 남아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후 45년의 유행시에 미얀마 서부의 라카인과 중부의 뜨리께티야, 만달레이 등 미얀마의 여러 곳을 방문하셨다고 믿고 있으며 방문하신 곳까지 지정되어 있다.  

또한 미얀마의 상인형제가 막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을 만나 불교에 귀의한 후 8개의 불발을 받아 미얀마로 돌아온 후 양곤 땅에 모셨는데 이곳이 지금의 쉐다곤 사원이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쉐다곤은 지금 미얀마의 3대 보물중 하나인데 나머지 두 개도 모두 부처님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있는 성물들이다.

그러다보니 미얀마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 속에 불심으로 힘들 때나 즐거울 때는 물론이고 이렇게 명절까지도 모두 사원으로 발길을 재촉하는 것은 당연시 된 것이다.  

     

타니가 신쀼 의식을 거치고 바로 사원에서 승려생활을 시작하고 그 다음날 새벽 타니의 어머니는 일찍 일어나 불단에 향을 피운 후 부엌으로 향한다.

많은 쌀로 밥을 지어 조심스럽게 그릇에 담아 거리로 나선다. 이미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아침 공양보시물을 가지고 마을앞길에 길게 앉아있다. 그 공양보시물중에는 어머니처럼 밥을 지어온 분들이 가장 많지만 마을 사람들은 다양한 음식으로 보시물을 준비하였다. 타니의 어머니도 그 줄 맨 끝에 앉아 보시물을 앞에 놓고 합장을 하였다.  

동쪽산자락에서부터 여명이 밝아올 때 드디어 저 멀리 스님들의 아침탁발행렬이 걸어오고 있다. 머리를 조금 숙이고 바루를 옆에 끼고 맨발로 천천히 걸어온다.

스님의 인원수에 맞게 조금씩 밥을 나누어 바루에 넣어 드린다. 모든 스님이 모두 지난간 뒤 어머니는 한참을 합장한 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스님의 행렬 맨 마지막에서 커다란 바루를 들고 행렬을 쫓는 막내아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 까지.

 

월간 금강 2018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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