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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제목 : 앙코르제국, 그 화려함은 사라지고.


글쓴이 : 포토스튜디오49

등록일 : 2020-02-26 22:25
조회수 : 29
 



앙코르 유적의 최고걸작으로 뽑히는 앙코르 왓의 일출




자야바르만 7세의 상징이된 사면관음상, 앙코르 톰의 출입문에도 조성되었다.




앙코르 톰의 중앙사원이자 앙코르 제국의 중심사원 바이욘,





세계불교문화유산시리즈 - 2,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

앙코르제국, 그 화려함은 밀림속으로 사라지고.

 

우리에게 캄보디아는 비극의 현대사를 대변하는 킬링필드의 현장으로 먼저 다가온다. 캄보디아는 폴 포트 정권이 장악한 1975년부터 79년까지 50만 명 이상의 국민을 잃어야했다.

그 영향으로 당시 사회의 지도층이었던 수많은 지식인과 기술자를 잃게 되면서 산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퇴보하면서 인접국보다 뒤쳐진 상태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만큼 캄보디아의 현대사는 잔혹하기만 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캄보디아 국민들에 몫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동남아시아를 지배하던 크메르 제국의 역사가 있었고 그 선조들이 남긴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앙코르 유적이 있어 이들의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 그리고 그 구심점에는 국민의 95%가 신자로 있는 불교가 있다.

     

캄보디아의 불교전래

캄보디아에 언제 불교가 전래되었는지는 사료마다 다르지만, 이 땅에 나라가 서기 이전부터 불교가 전래되었다는 점은 공통으로 나타난다.

스리랑카의 빨리어로 기록된 마하왕사 Mahavamsa, 大王統史에는 기원전 309년에 전해졌다는 기록이 있고 또 다른 기록에는 기원전 250년 인도 마우리아왕조의 아소카황제가 파견한 소나(Sona)스님과 웃따라(Uttara) 스님이 도착한 곳이 지금의 캄보디아라는 설이 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이 수완나부미(Suvannabhumi)’라고 하는데 황금의 나라라는 뜻이 있어 농업이 흥했던 이곳 캄보디아라는 것이다.

전래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많은 이견이 있지만, 지리적으로 인도와 가까운 관계로 일찍부터 문화와 종교가 직접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것은 캄보디아 최초의 국가인 부남국(A.C 86550, 扶南國)의 개국설화에서도 나타나는데 인도에서 건너온 왕이 이곳을 지배하던 여자와 결혼하여 세웠다는 것이고 많은 사서에서도 부남국은 불교국가로 기록된 점으로 보아 불교가 왕실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까지 일반화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일찍이 불교가 많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존재하다보니 캄보디아의 역사 속에서 불교 사원도 많이 건축되어 현재까지 남아있는데 그래도 가장 화려한 불교문화유산을 남긴 시기는 통일왕조를 이룬  크메르 제국(Khmer Empire) 즉 앙코르 왕조 때다.

앙코르 왕조(8021431)는 첸라(Chenla 550802 眞臘) 시기 이후 혼재된 세력들을 자야바르만 2(Jayavarman2, 재위802~834)가 통합하여 802년 지금의 꿀랜산(Kulen M)에 있는 마헨드라빠르바타(Mahandraparvata)에서 새 왕조를 열었다. 이후 지금의 톤레샆 호수의 인근으로 이전했지만 889년에 즉위한 야소바르만 1(Yasovarman I, 재위 889910)가 자신의 이름을 딴 새로운 도시 야소다라뿌라(Yasodarapura)를 건설하면서 많은 사원들을 건축하였는데 이곳이 우리가 알고 있는 앙코르지역이다.

많은 왕들 중에도 특히 1113년에 즉위한 수리야바르만 2(Suryavarman )는 최고 걸작으로 뽑히는 앙코르 왓(Angkor Wat)을 남겼고, 1181년에 즉위하여 1218년까지 통치한 자야바르만 7(Jayavaman)는 현존하는 거의 대부분의 불교사원을 건설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불교건축물을 남겼다.

     

앙코르의 불교유적

앙코르유적지에 가보면 검은 돌로 건축된 이 사원이 힌두사원인지 불교사원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모든 자료들은 불교사원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사원에는 힌두적인 요소가 더 많기 때문이다.

불상이 있어야 할 자리에 시바신의 상징인 링가(Linga)와 요니(Yoni)가 있고 주변의 모든 조각장엄 역시 힌두조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분이 불가능한 것은 당시 불교의 성격이 지금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당시 불교는 밀교적 요소가 강한 산스크리뜨계 대승불교이자 힌두와 섞인 힌두불교였기 때문이다. 또한 힌두교에서도 부처를 비쉬누(Vishnu)의 화신으로 보았기에 모든 사원들이 힌두요소와 불교요소가 뒤섞여 건설되었다. 사회적인 분위기도 불교도 혹은 힌두교도로 확실하게 구분한 것이 아니라 내세와 현세를 위한 두 개의 종교를 동시에 신봉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반 백성들뿐만이 아니라 당시 통치하던 왕들도 마찬가지였다. 즉위하는 왕들은 사원을 건축하였는데 그의 통치이념과 종교에 따라서 사원들의 성격이 달라졌다.

역대 왕들 대부분이 힌두 신들을 신봉하는 왕들이었는데 그들은 힌두사원만을 건축한 것이 아니고 불교사원도 건축하였다. 반대로 불교를 신봉하는 왕들도 불교사원 뿐 아니라 힌두사원도 건축한 것이다당시 사원의 형태는 거의 같았고, 단지 중앙신전에 어떤 신의 상징물을 안치하고 장엄하는 것에 의해 사원의 성격이 구분된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즉위하는 왕들이 새로 사원을 짓는 것이 아니라 있는 중앙사원에 자신이 신봉하는 신을 모시면서 힌두사원이 불교사원으로 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하였다.

이때 주변의 종교적 성격이 강하게 보이는 조각은 긁어내고 다시 조성하는 일이 많아 더욱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자야바르만 7

앙코르지역에서 가장 많은 불교사원을 지어 봉헌한 왕은 자야바르만 7(Jayavaman, 재위 11811218). 그가 건설한 사원들이 지금 앙코르지역에 남아있는 불교사원들의 대부분인데 그가 즉위하기 전에 건설된 것으로 확인된 불교사원은 따 네이(Ta Nei)사원과 밧 춤(Bat Chum)사원 등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자야바르만 7세는 즉위 후 제국의 수도이자 권력의 중심지였던 앙코르 톰(Angkor Thom)의 중심에 바이욘 사원을 건축하였고 어머니를 위한 사원 따 쁘롬, 아버지를 위한 뿌레아 칸, 백성들의 건강을 위한 사원인 닉 뽀안 등을 건설하였다.

그는 대승불교 신봉자였고 자신을 스스로 크메르왕국의 모든 백성들을 보살피는 보살(bodhisattva)로 생각하고 행동하여 전국에 불교사원을 건축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많은 석문에서 발견되는데 나의 가장 큰 고통은 백성들이 아파하는 것이다라며 백성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병원 겸 사원인  타 프롬 겔(Ta Prohm Kel)을 전국에 건축하였고,  ‘생존의 바다에 빠져있는 모든 존재들을 선행으로 구해내고자 한다라는 뜻으로 모든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펴보기 위해 건설된 사원이 바로 바이욘(Bayon)사원이다.

그래서 바이욘은 앙코르 톰의 중앙사원이자 앙코르 왕국의 중심이기에 그 상징성이 큰 사원이다.

바이욘 사원은 지금까지 보여 왔던 사원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방식으로 건설되었는데, 사원의 중앙신전 주변에 54개의 탑을 세우고 그 탑에 미소를 머금은 200개의 보살상을 조성하였다. 이들 보살상들은 사면불의 형태인데 이는 동서남북을 바라보며 자신이 백성들을 항상 보살피고 있다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상징적인 의미는 1층 회랑의 벽화와도 연결된다. 모두 1,200m가 넘게 이어지는 회랑의 벽에 11,000점이 넘는 백성들의 모습을 벽화로 그려놓았다. 이 벽화에는 참족의 침입을 승리로 물리치는 장면과 백성들이 생활하는 모습들을 아주 디테일하게 조성하여 사면관음으로 백성들을 보살핀다는 자야바르만 7세의 통치이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바이욘의 사면관음은 여기뿐 아니라 앙코르 톰 네 개의 출입구에도 조성되었을 뿐 아니라 그가 건설하는 모든 사원의 출입구에 적용하였다. 그는 제국의 수도인 앙코르 지역만 신경 쓴 것이 아니다. 통일된 국토를 남북으로 횡단하는 도로를 건설하였고 도로의 중요지점에 백성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도로 주변에 수많은 불교사원을 건설하였는데 도로의 남쪽으로 끝 70km지점에는 꼼퐁스바이 쁘래아 칸을 불교사원으로 조성하였고, 북쪽 100km지점에도 반테이 츠마르사원을 불교사원으로 조성하여 장장 170km에 이르는 불교순례길을 조성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시작과 끝에 있는 두 사원은 정사각형으로 조성되었는데 외벽의 길이가 5km에 이르고 해자까지 조성 된 것으로 밝혀져 변방에 있는 사원까지도 많은 공력을 기울여 건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앙코르 사원의 특징

이렇게 조성된 사원들은 인도의 사원건축방식을 따랐지만 그 세부로 들어가면 이 지역만의 전통종교를 흡수하여 융합된 방식으로 조성되었다.

이러한 모습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하는데 이 부분이 앙코르 건축, 앙코르 사원을 상징하는 부분이 되었다.

앙코르 사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조각이다. 그런데 이 신전조각들은 인도문화의 영향으로 시작되었지만 조성하는 방식과 활용은 인도보다 더 세련되면서도 실용적으로 나타났다.

벽에 압사라(Apsara)의 조각을 연속적으로 등장시켜 율동성을 나타나게 하는 방식과 전통신앙의 하나인 나가(Naga)가 사원 안으로 흡수되면서 세련되게 변해 가는데 종교적인 신성함을 넘어서 석조건축에 실용성을 더한 난간 역할까지 할 수 있게 조성되었다.  

건축방식에서도 초기에는 벽돌로 건축하고 외부를 스투코(Stucco)를 칠하고 조각하였는데, 중반기를 넘어가면서는 사암을 마야아치(Corbelled Arch)로 건축하고 외부를 직접 조각하는 방식을 썼다. 이때부터 앙코르 조각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가장 발달한 곳이 출입문의 린텔(Lintel)부분이다. 원래 린텔은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상인방(上引枋)인데 돌로 건축하다보니 무게를 버티게 넓은 면적의 돌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 넓은 면을 조각으로 장식하게 되면서 중요한 신화의 한 장면을 조각하게 되면서 가장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앙코르 건축의 특징이 되었다.    

이렇게 조성된 사원의 가람과 형태를 보면 앙코르지역의 힌두사원과 불교사원이 구분되면서 사원들의 성격이 잘 나타난다.

앙코르는 농업국가라서 앙코르의 왕들은 이 물 관리로 왕권을 유지하거나 왕의 권위를 보여주었다. 이 방식이 왕들의 중요한 통치방식이었으며 백성들에게는 왕의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대였다. 이러한 물 관리를 하는 방식에서 힌두교도 왕과 불교도 왕이 구분되었다.

초기 힌두교를 신봉하는 왕들은 힌두신전을 조성할 때 사각의 피라미드기단을 세워 높이고 그 위에 메루 산을 상징하는 신전을 조성하여 신성성과 왕의 권위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백성들을 위해서는 별도의 대형 저수지를 조성하여 경제적 기반으로 삼았다.

그러나 불교를 신봉하는 왕들은 신전을 조성하면서 피라미드 기단 대신 평지사원으로 낮게 조성하였다. 대신 사원을 둘러싸는 해자와 사원의 입구 정면에 별도의 커다란 저수지를 조성하여 단순한 농업용저수지가 아니라 신전의 신성성과 농업용수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는 신성한 사원을 통과한 물로 농사를 짓는 영광을 누리는 것이고 종교적으로도 사원의 모습이 물위에 떠 있는 연꽃의 형상으로 조성되어 종교적인 신성성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별도의 저수지를 조성하는 것보다 더 많은 수량을 확보 할 수 있었고 더위에 지친 백성들의 휴식공간도 제공하는 다목적이었다.

이러한 탓에 앙코르 사원들은 물과 관련된 부분이 특화되었는데, 일부 사원은 인공적으로 사원내부로 물을 끌어와 중앙신전이 물위에 떠있는 형상으로까지 조성하는 감각과 기술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조성된 앙코르의 유적은 힌두와 불교, 외래문화와 전통문화가 융합되어 중요한 유적지로 남게 되었다.

앙코르 왕조의 630여년 중 절반의 역사가 축적된 앙코르 유적은 자야바르만 7세 이후 태국에 왕국을 세운 아유타야왕국의 잦은 침입으로 제국의 힘이 약화되면서 1434, 수도를 남부지역 차투 무카(Catur Mukha, 프놈펜)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앙코르 지역은 태국의 영향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태국 불교신도들이 이곳에 종교 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들은 대승불교가 아니라 지금의 상좌부불교(Theravada)이다.

이렇게 태국의 상좌부불교도들이 앙코르지역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캄보디아는 물론이고 동남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을 때였다. 그렇다보니 밀교적 대승불교와 힌두신앙은 소멸되어갔고 앙코르유적도 상좌부불교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사원들이 밀림 속에 방치되고 일부사원만이 상좌부불교사원으로 유지되다가 18세기에 서구 탐험가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화려했던 앙코르의 수많은 사원들은 점점 관광지로 변해서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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