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스케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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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로 태어나 불교로 꽃피운 왕국 태국 아유타야(Ayutthaya) 불교유적 동남아시아에 몽골세력이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13세기 이후 새롭게 등장한 왕국들은 대부분 소승불교를 통치이념으로 한 불교왕국들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불교왕국들이 치열한 전쟁을 통해 왕국을 유지하고 사원을 건설했다는 점이다. 특히 16세기에 이르게 되면 더욱 치열한 세력다툼이 벌어지는데 그 가운데에 태국의 불교왕국 아유타야 왕국(Ayutthaya Kingdom, 1530~1767)이 있었다. 아유타야는 태국의 역대 왕국 중 33명의 왕이 200년 이상을 통치한 가장 긴 왕국이었다. 기본 경제기반은 농업이었지만 중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고려와도 교역이 이루어진 역동적인 상업왕국이었다. 이러한 조건은 라마디빠띠 왕(Ramadhipati, 1350~1369)이 1350년 왕국을 건국한 지역이 짜오프라야 강 중부지역 커다란 섬이라 수로를 이용하면 쉽게 외부로 나갈 수 있었던 지정학적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뜨라이록까낫(Tralokkanat, 1448~1488) 왕이 즉위하면서 아유타야왕국은 소승불교를 기반으로 한 불교왕국으로 기반을 확립하였다. 그는 왕궁을 옮기고 그 자리에 불교사원 왓 프라 씨 싼펫(Wat Phra Si Sanphet)을 짓는 등 왕국에 많은 사원을 새로 짓거나 옛 사원을 재건하였다. 또한 1458년부터 3년간 500여기의 보살상을 조성하여 안치하였고 북쪽의 핏싸누록(Phitsanulok)에 쭐라마니(Chulamani)사원을 새로 지으면서 2,400명이 넘는 왕족과 귀족들이 수계를 받게 하고 왕 자신은 1년여 동안 수행자로 생활하기도 하였고 고위공직자들은 의무적으로 승려생활과 경전시험을 통과해야만 임명이 되었다. 이후에도 아유타야 왕들은 직접 불경 번역에 참여하고 설법함은 물론이고 불경을 쉽게 이해하기위한 새로운 작품을 저술하여 불교문학의 영역을 만들기도 할 만큼 불교에 대한 관심과 실력을 겸비하였다. 또한 장로승려들을 실론에 보내 수계를 진행하였고, 시험을 거쳐 승려의 권위와 신분을 보장하는 정책도 시행하였다. 이러한 아유타야의 불교관련정책은 주변의 불교왕국에서 경쟁적으로 받아들여 시행하고 발전시키면서 동남아시아의 불교문화는 가장 화려한 정점을 이루었는데 이때 아유타야 왕국에는 금빛 찬란한 불상과 불탑들로 가득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앙코르왕국에서 전리품을 챙겨 왕국을 장엄했듯이 1564년과 1569년에 버마의 침략을 받아 왕국은 약탈당해야만 했다. 버마는 당시 아유타야 왕실에서 소유하고 있던 부처의 화신으로 여기던 흰 코끼리를 나누어 줄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무력을 사용한 것이다.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1767년 또다시 자행된 침략으로 왕국은 완전 폐허가 되어야 했다. 이때 사원의 금불상은 물론이고 불탑의 외부를 장식했던 금판들이 모두 뜯기어 약탈당해 전각과 불탑들은 벽돌이 그대로 드러난 폐허의 상태가 되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약탈이 멸망으로 이어지지는 않아 왕국은 잠시 전성기를 되찾았지만 왕의 광기와 이교도인 이방인 관리의 폭정으로 왕국은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비록 아유타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화려했던 불교문화와 정책은 그대로 다음 왕조인 짜끄리왕조(방콕왕조, Chakri Dynasty)가 이어받게 되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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