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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제목 : 인도불교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다 - 산치대탑


글쓴이 : 포토스튜디오49

등록일 : 2021-08-06 22:57
조회수 : 35
 













인도불교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다. - 인도 산치대탑

     

     

아침햇살을 따라 바위언덕을 오르다보면 잠깐의 오름에도 주변의 풍광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황무지와 구릉이 끝없이 전개되는 인도대륙의 데칸고원이다.

이 검푸른 데칸고원을 발아래 둔 작은 동산에 오르면 역광 실루엣으로 드러나는 거대한 원형의 대탑이 있는데, 산치불교유적군의 중심 산치대탑이다.

이곳은 아소카대왕의 사랑이야기가 깃든 곳이기에 종교적 의미 그 이상의 성지가 되었다.

    

아소카대왕이 왕위에 오르기 이전 데칸고원의 아래쪽 웃자인(Ujjain)지방에 관리로 나가 있었다. 이미 왕권의 서열에서 멀찍하게 떨어져있던 아소카 왕자는 정치보다는 사냥에 빠져 있던 때에 가난한 여자 데위(Devi)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시간이 지난 후 왕실에 부름을 받은 아소카왕자는 왕위에 오르며 정복전쟁을 벌이면서 데위를 잊고 살게 된다.

홀로 힘들게 남매를 키우던 데위는 결국 병에 걸려 죽으면서 그들의 아버지가 아소카왕이라는 사실을 남매에게 알리고 죽게 된다. 어린 남매는 어머니의 장사를 지낸 후 아소카왕을 찾아가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게 되고 아소카왕은 자신이 잊고 살았던 여자를 생각하고 그의 묘소에 대탑을 세워 명복을 기원하면서 전륜성왕으로 거듭난다. 이것이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각색되어 전해진 아소카왕의 사랑이야기다.

이렇게 사랑이야기는 멀리 퍼져나갈수록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야기에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로 만들어 나간다.

그러나 가난하고 가련한 여인으로 알려진 데위는 상업도시 웃자인지역 부호의 딸인데, 산치대탑의 조성과 사원의 재정적 뒷받침을 한 대상의 집안이다.          

홀로 키운 남매는 수행자의 삶을 살다가 아버지인 아소카왕의 명으로 스리랑카에 불교를 전한 마힌다 장로와 상감미따이다.  

     

산치불교유적군이 조성된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소카왕자의 부인인 데위(Devi)가 조성했다는 웨디사기리(Vedisagiri)사원이 산치사원의 시원으로 추정한다. 이후 아소카대왕이 대탑을 조성하였고 이어지는 왕조의 후원으로 증축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대탑을 중심으로 사원들이 건축되어 수행처이자 불교성지로 12세기까지 이어져 1500년간을 유지하였다.

이렇게 산치언덕 한곳에 오랜 시간이 쌓이다보니 사원들이 시대에 따라 반복적으로 세워졌다.

그러다보니 산치언덕에는 형식을 달리한 사원들이 겹을 쌓았지만 오로지 변하지 않은 것은 그 중심인 산치대탑이었다.

     

산치대탑은 둥근 기단위에 원형의 탑신과 상륜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대탑을 둘러싼 울타리가 있고 네 방향에 토라나(torana)라고 하는 석문이 있다.

이 석문은 종교적으로 세속공간과 신성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인데 출입구인 토라나의 각 면마다 부처님을 상징하는 문양이나 가르침, 자카타 등을 표현한 섬세한 조각으로 가득 채웠다.

석문을 들어서면 탑을 돌 수 있는 아랫길(下部褥)이 있고 시계방향의 계단을 통해 탑신이 있는 테라스에 오를 수 있다.

좁은 테라스(上部褥)는 탑돌이를 할 수 있는 의식공간이자 종교적으로 성물에 가장 가까운  신성영역이다. 이 테라스의 외곽에는 돌로 조성된 난간(欄楯, vedika)이 있는데 이곳의 돌기둥에 불사에 보시한 이들의 이름이 있어 가장 큰 후원자들은 지역의 대상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원형의 탑신은 구운 벽돌을 쌓고 그 외부를 회반죽(stucco)으로 마감하여 순백색의 신성함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맨 상부에는 상륜이 있는데 이는 하늘과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사각의 울타리(露盤) 안에 우산형태로 조성한 세 개의 원형 돌(傘竿)로 상륜을 구성하였다.  

이 대탑은 직경이 36.6m, 높이가 16.46m로 인도에서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가장 큰 탑에 속한다.

     

산치대탑 주변으로 작은 탑인 2호 탑과 3호 탑, 그리고 10여기의 소형 탑들이 있고, 주변에는 많은 석재들이 널려있는데 모두가 시간을 달리하며 건축된 사원들의 부재들이다.

예불공간인 차이티야(Caitya)는 대탑주변으로 50여 곳에 남아있지만 대부분 붕괴정도가 심하다. 그나마 남아있는 석재들로 추정해 보면 초기불교사원의 형태부터 후기의 형태까지 다양하게 건축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신성공간인 차이티야가 석재로 건축된 것에 비해 수행자들의 생활공간인 비하라(Vihara)는 나무로 건축되었다.

대탑과 떨어진 정남쪽 바위언덕아래에 가로세로가 약 30m되는 사각형의 건물터가 남아있다. 중앙에 큰 방이 있고 그 옆에 작은 방 22개가 나란히 배치된 구조였지만 화재로 기단만 남아있다.

건물터 우측에는 굴곡진 바위 끝자락을 파내어 생활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연못을 조성하였다.

이러한 산치대탑의 모습은 원래 인도 상류층 무덤의 형태에서 발전하였다. 초기 무불상시대에는 부처님을 상징하는 성물로 사원 내부에 안치되었지만 불상이 조성되면서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산치대탑은 인도 탑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탑이다. 종교와 왕조가 수없이 교차되는 인도대륙에서 이렇게 원형이 보존 되며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지역적 특색과 주변 상인들의 절대적 후원에 의해서다.  

데칸고원이 인도대륙을 남북으로 갈라놓으면서 그 남쪽 끝자락에 속한 산치는 그 경계선에 위치해 역사적 혼란기를 피해 갈 수 있었다. 또한 대륙에서 불교가 쇠퇴기를 맞이하는 순간에도 힌두의 요소를 받아들이면서 완전파괴는 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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