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Sub Promotion

여행스케치


제목 : 스리랑카 담블라 석굴사원


글쓴이 : 포토스튜디오49

등록일 : 2022-02-21 12:40
조회수 : 11
 







담불라황금사원’(Golden Temple of Dambulla)                       

     

     

기원전 103, 스리랑카 아누라다뿌라 왕국에 왕위에 오른 지 몇 개월밖에 되지 않은  바라감바후(Valagamdahu, 재위 BC 10476)왕은 남인도 타밀족의 침입을 받았다.

바다를 건너온 인도군대는 북부 평야지대를 휩쓸고 왕국의 수도였던 아누라다뿌라까지 점령하였다. 왕은 급하게 왕궁을 버리고 도망하여 목숨은 부지하였지만 왕국의 군대는 뿔뿔이 흩어지고 귀족들도 모두 산속으로 피신하여 왕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중 수도승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바위산 토굴에 몸을 숨길 수 있었는데 이곳은 왕궁에서 남쪽으로 66킬로 떨어진 곳이었다.

왕은 이곳에서 수행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은밀히 흩여진 군대를 모으고 귀족들을 찾아 왕국의 조직을 정비하여 14년 후 다시금 왕국을 되찾을 수 있었다.

왕은 어려움에서 자신을 구해준 부처님과 수행자들의 은혜를 갚고자 자신이 숨어 살던 토굴에 두 개의 석굴사원을 건립하여 수행자들에게 헌납하였다.

이로써 작은 토굴의 수행처에 불과하던 바위산에 제법 커다란 석굴사원이 생기면서 이곳은 더 많은 수행자들과 신자들이 모이게 되었는데 이곳이 담불라석굴사원의 시작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현지인들은 랑기리 담불라 라자마하 비하라(Rangiri Dambulla Rajamaha Vihara)로 불러서 아직까지도 사원(Temple)이 아닌 수행자들의 수행처(Vihara)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사원의 형식을 갖춘 이후 왕들은 나라에 위기가 있을 때마다 새로운 석굴사원을 조성하고 기존의 석굴사원을 보수하면서 불심으로 국난을 이겨내려 노력하였다. 특히 남인도 촐라왕국의 침입이 잦았던 513세기에 가장 크게 확장되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수리가 이루어진 18세기에는 서양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을 이겨내기 위함이었는데, 캔디왕국시절 키르티 스리 라자싱하(Kirti Sri Rajasinha, 재위 17471782)왕이 대대적으로 보수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담불라석굴사원은 랑기리(Rangiri)라고 하는 검은 바위산 중턱에 위치해있는 주변에서 가장 높은 바위산이다.

석굴사원은 산의 중턱 커다란 바위아래 위치해 있는데 기원전 3세기부터 19km 떨어진 시기리야(Sigirya)바위산과 더불어 인근에서 가장 많은 수행자들의 수행처로 이용되던 곳이었다.

초기에는 수행자들이 여러 곳에 비를 피할 정도의 토굴을 파고 수행하던 곳이었다.

랑기리 바위산은 석질이 특이하여 다른 지역의 석굴사원과는 다른 방식으로 착굴되었다. 일반적으로 인도와 중국의 석굴사원들이 절벽의 옆면을 파고들어가는 방식으로 착굴되어 반듯한 내부공간으로 완성되었지만, 담불라석굴사원은 커다란 바위아래 쉽게 부서지는 사암을 긁어내는 방식으로 조성되어 내부공간의 벽면 높이가 각기 다르고 천정은 거친 바위의 원래 모습 그대로 조성하였다.

처음 조성할 당시에는 입구의 1번 석굴과 2번 석굴 두개의 석굴사원으로 조성되었지만 현재는 안쪽으로 세 개의 석굴이 조성되어 다섯 개의 석굴사원에 153기의 불상과 3개의 왕의 석상이 안치되어 있다.

첫 번째 석굴을 제외하고 나머지 네 개의 석굴은 앞에 조성한 복도를 통해 입구가 연결되는 구조다.

각 석굴의 벽과 천정에는 천연염료로 조성된 수많은 프레스코 벽화로 가득 채워졌는데 채색된 부분만 620평으로 대부분 부처님의 전생이야기인 자카타(Jataka)와 스리랑카에 불교가 전해질 당시의 모습, 그리고 불교를 상징하는 많은 문양들뿐만이 아니라 역사의 한 단면이나 힌두의 모습, 세속의 일들까지 모든 것들을 포용해 그린 것이 특징이다.

현재 벽화는 18세기에 대대적으로 보수수리하면서 캔디양식의 특징을 가진 벽화로 장식했는데 그 특수성이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캔디양식의 벽화는 대체적으로 원근법이 없이 주제를 직설적으로 나타내고, 인물의 뒷면을 그리지 않는 특징이 있다. 또한 이야기의 줄거리에 따라 화면을 나누어 그리면서 그림 밑에 글로 보충해서 설명한다. 이러한 특징은 동남아시아 대부분으로 전파되어 많은 사원에서 그려졌다.  

     

랑기리 바위산과 더불어 거의 동시대부터 수행자들의 최대 수행처로 알려졌던 시기리아는 이제는 스리랑카 최대 관광지가 되어 이곳이 수행처였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해 버렸다. 비록 담불라사원도 많이 달라져 산 아래 입구에는 커다란 주차장이 있고 주변에 기념관과 학교, 그리고 대단위 불상아래 조성한 법당으로 들어가는 많은 순례자들로 매우 혼잡스럽다.

그러나 바위산으로 오르는 길은 한적하고 석굴사원은 조용하고 내부는 적막감마저 돈다.

속세의 번잡함을 뒤로 하고 아침햇살에 받는 조용한 사원을 보노라면 옛 수행자들이 선택한 수행처에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섬나라 스리랑카의 불심은 어려움 속에서 더욱 굳건하게 꽃피우는 연꽃 같은 불교이자 상좌부불교 종주국의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송광사 사보2021-11월호

 
번호 제목 글쓴이
 국제선을타다는 해외여행관련 글을 올리는 공간입니다.
포토스튜디오49
24  잊혀진 제국의 영화가 사원으로 부활하다. 몽골 카라코룸(Kharakorum)의 엘덴 죠 (Erdene Zuu Hiid)사원
포토스튜디오49
23  여명 속 지평선에서 피어나는 수없는 불탑의 도시 미얀마 바간(Bagan)
포토스튜디오49
22  산간지역에 솟아난 샨(Shan)의 불탑들
포토스튜디오49
21  여명 속 지평선에서 피어나는 수없는 불탑의 도시
포토스튜디오49
20  여명 속 지평선에서 피어나는 수없는 불탑의 도시
포토스튜디오49
19  잊혀진 제국의 영화가 사원으로 부활하다.
포토스튜디오49
18  지극정성으로 이룩한 인도종교의 복합공간 엘로라 석불사원군 Ellora caves
포토스튜디오49
17  태국에 불교문화가 시작되다. 태국 수코타이(Sukhothai) 불교유적
포토스튜디오49
16  인간의 조성물은 순간지만 부처님의 진리만은 영원하다.
포토스튜디오49
15  만다라를 지상에 구현하다.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사원 Borobudur Temple Compounds
포토스튜디오49
 스리랑카 담블라 석굴사원
포토스튜디오49
13  스리랑카 신성도시 아누라다뿌라
포토스튜디오49
12  인도불교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다 - 산치대탑
포토스튜디오49
11  부처님의 가르침을 예술로 만나다. 인도 아잔타석굴사원(Ajanta Caves)
포토스튜디오49
10  긴 불교의 역사가 깊은 슬픔으로 변한 땅, 라카인
포토스튜디오49
9  몬족들의 불교문화가 꽃피운 수완나부미(Suvarnabhumi) - 미얀마 남부해안지역
포토스튜디오49
8  부탄의 역사와 불교가 시작된 곳 – 붐탕계곡 부탄
포토스튜디오49
7  부탄 존재를 세상에 알리다. - 부탄 서부
포토스튜디오49
6  세계불교문화유산시리즈 - 아잔타석굴사원 (Ajanta Caves)
포토스튜디오49
    


12>

enFree